“라디오·뉴미디어·TV 오갔는데…해고 사유조차 제대로 듣지 못해”
KBS전주방송총국 “원고 등 부정적 평가로 재계약 진행 안 한 것”

“스물 셋, 대학 졸업 전부터 KBS전주방송총국에 들어와 7년간 청춘을 바쳤지만 일방적으로 해고를 통보 받았다. 일할 땐 정규직 잣대가, 처우에 대해선 프리랜서 잣대가 적용돼왔다. 수신료로 운영되는 공영방송이기에 더더욱 그냥 넘어갈 수 없다.”

2015년부터 KBS전주방송총국(이하 KBS전주)에서 일해온 방송작가가 갑작스레 해고를 당했다며 피해를 주장하고 나섰다. 수신료 가치를 위해 공적책무를 강화하겠다는 KBS가 방송작가의 권리를 보호하자는 취지의 계약을 오히려 노동자를 내모는 수단으로 삼았다는 지적이다.

최근까지 KBS전주에서 ‘생방송 심층토론’ 작가로 일해온 A씨는 28일 전북지방노동위원회에 자신이 일했던 회사를 상대로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냈다. 지난 6월30일 잠깐 이야기를 하자던 KBS전주 보도국장이 ‘7월31일 계약만료로 계약은 연장되지 않는다’고 일방적으로 통보했다는 것이다.

A작가는 당시 보도국장이 일부 구성원과의 ‘불화’를 언급했을 뿐 관련 사유를 밝히지 않았다고 말한다. 계약 만료 통보를 서면으로 해 달라는 요구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비슷한 시기 A씨를 비롯한 보도국 소속의 작가 3명은 각각 재계약 불가, 작가 공모, 재계약으로 운명이 갈렸지만 그 기준에 대한 설명도 듣지 못했다. 결국 A씨는 인수인계를 끝으로 7년간 일한 직장을 떠나야 했다.

▲상자 한 개를 양 손으로 받쳐 든 한 사람이 고개를 떨군 채 서 있는 이미지 ⓒgettyimagesbank
▲상자 한 개를 양 손으로 받쳐 든 한 사람이 고개를 떨군 채 서 있는 모습의 일러스트 이미지 ⓒgettyimagesbank

PD·국장 협의 있어야 가능한 업무, 잔업 도맡아…수년간 여러 부서 거쳐

A작가가 후임을 위해 남긴 인수인계 자료는 일주일간 근무가 얼마나 종속적으로 반복됐는지 담고 있다. 오전 9시 출근을 기본으로 프로그램 아이템 논의부터 제작 관련 업무는 담당 PD 및 국장과 협의를 바탕으로 이뤄졌다. 보통 방송작가 업무로 떠올리는 섭외나 원고 작성 외에도 패널 출연료 및 스태프 계약서를 당사자 및 행정 부서에 전하고, 다른 팀에 영상을 넘기고, SNS를 관리했다. 패널이 쓸 물티슈나 셔츠 세탁 관리, 의전, 스태프 음료수 배부도 작가의 몫이다.

‘심층토론’을 맡기 전엔 더 광범위한 업무를 도맡았다. 2015년 KBS전주에 처음 입사했을 때 A씨의 직업은 라디오작가였다. 녹음방송 편집을 비롯해 전반적 업무를 맡았고, 담당PD 휴가 시엔 결재를 대신하기도 했다. 3년 뒤 2018년부턴 보도국 뉴미디어 소속으로 일했다. 1년여 뒤 뉴미디어팀을 없애자는 회사 논의가 이뤄지면서 2019년 11월 담당 부장의 제안으로 TV방송 ‘심층토론’을 맡게 됐다. 직무를 옮길 때마다 짧게는 1~2주, 길게는 한달에 이르는 인수인계도 매번 진행됐다.

이렇게 A가 수년간 방송사에 필요한 역할을 맡는 동안 근로계약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러다 지난해 9월, 6년만에 처음으로 서명한 프리랜서 계약서가 되레 A는 법적 근로자가 아니라는 지위를 인증하는 결과로 이어졌다. A는 “2020년 9월11일 계약서에 서명했는데 서류상 계약 기간은 지난해 8월1일부터 올해 7월31일까지였다는 것도 나중에 확인했다”고 말했다.

이번 부당해고 구제신청을 맡은 김유경 노무사(돌꽃 노동법률사무소)는 A씨의 업무 자체가 그를 프리랜서로 볼 수 없는 이유라 주장한다. “특정 작업을 완성해 납품하라는 게 도급계약이고 특정한 파트만을 떼어내서 맡기는 게 프리랜서 계약이다. 회사가 여러 부가적 지시를 한 것만으로도 A씨가 법적 근로자라는 징표”라는 것이다. 실제로 지난 2019년 MBC 계약직 아나운서의 부당해고 구제신청과 관련해 서울행정법원은 “종속적인 관계에 있는 아나운서 직원이 아니라면 수행하지 않을 업무에 관해 여러 차례 지시했다”는 점 등을 들어 근로자성을 인정한 바 있다.

김 노무사는 “방송 프로그램 제작은 협업이고 작가 혼자서 어느 것도 결정할 수 없다. 원고를 쓰면 방송 전까지 여러 차례 지시에 따라 수정을 거치고 넘기는 과정이 있기에 독립적으로 일할 수 있는 구조가 전혀 아니다”라고 말했다.

KBS전주 “원고 집필, 구성에 부정적인 평가 지속돼…계약만료 알린 것 뿐”

KBS전주는 A작가 생산물에 대한 평가를 바탕으로 계약이 만기됐기에 문제가 없다는 입장이다. KBS전주는 28일 “계약 기간 A씨의 토론 원고 집필, 구성 결과에 대해 지속적으로 부정적인 평가가 있었다”며 “부정적인 평가는 A씨도 알고 있었다”고 주장했다. 내부 구성원과의 불화가 원인이란 것은 오히려 A작가 관점이라는 것이다.

▲KBS전주방송총국. 사진=KBS전주 홈페이지
▲KBS전주방송총국. 사진=KBS전주 홈페이지

KBS전주는 또한 “계약을 종료하고자 할 경우 4주 이상의 기간을 두고 통보하도록 돼 있다”며 “계약만료를 알린 것인데 공문을 작성해 전달하라는 건 전례도 없고 적절하지 않은 일이라 판단해 응하지 않았다”고 했다. A씨가 사실상 근로자로서 일해왔다는 주장에 대해선 “법적, 행정적으로 판단할 문제”라며 “생방송이 나가는 화요일을 제외하고는 업무 시간(출퇴근), 업무 장소 등에 관해 아무런 구속이나 제재가 없었다”고 했다.

김한별 전국언론노동조합 방송작가지부장은 “A작가가 일해온 실질적인 내용을 보면 ‘무늬만 프리랜서’라 볼 수 있다. 근로자에게 해고를 통보하려면 절차를 밟았어야 하기에 부당해고”라 주장하며 “지역 방송사 작가들은 ‘화분에 물주기’ 같은 자잘한 업무가 많은데, 오히려 근로자성을 인정받을 여지가 많다. 그럼에도 좁고 일자리가 적은 지역사회에서 부당한 문제를 견디며 일하는 분들이 많은 상황”이라 설명했다.

지역사 방송작가의 부당해고 다툼 공론화… “작가라고 이렇게 대해선 안 돼”

김 지부장은 “KBS 본사에 대한 교섭 요구안에도 ‘지역작가 처우개선’이 포함돼있다”며 본사 차원의 개선의지 또한 촉구했다. 그는 “모든 방송사들이 ‘법적으로 근로자성 판단 나오면 따른다’는데, 방송에선 노동 문제를 다루면서 내부 문제는 선도적으로 해결하지 않는 게 방송사의 책무인가”라고 반문한 뒤 “노조 차원에서 이번 사례로 지역사 사건을 처음 공론화하게 됐다. 그 과정에서 많은 이야기들을 할 수 있을 것 같다”고 했다.

A작가는 “주변에서 (소송까지 갈 경우) 3년 후를 봐야 한다고 이야기한다. 앞으로 내가 진행하는 일의 결과가 선례가 될 수 있다는 부담도 있지만 프리랜서라고, 작가라고 이런 식으로 대하면 안 된다는 걸 꼭 증명하고 싶다”고 강조했다.

부당해고 구제신청에 앞서 A작가가 지난달 고용노동부 전주지청에 제기한 직장내괴롭힘 관련 진정 사건도 진행 중이다. 한 달여가 지나도록 사측 조사는 진행되지 않고 있다. 본사·지역 법률대응을 총괄하는 KBS본사 법무실은 “변호사를 선임해 일정을 조율 중”이라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