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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0501 [시사IN] ‘방송작가도 노동자다’ 20년 만의 인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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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최고관리자 작성일21-05-03 16:35 조회4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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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작가도 노동자다’ 20년 만의 인정
  •  권지현 (언론노조 방송작가지부 영남지회 부지회장)
  •  호수 710
  •  승인 2021.05.01 13: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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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현지 그림

지금까지 나는 두 번의 ‘시위 현장’을 경험했다. 2001년과 2021년 꼭 20년의 간격을 두고. 2001년 나는 대구 MBC 앞에서 검은 조끼를 입은 여성들을 만났다. 며칠째 방송국 정문 앞을 지키고 앉아 있다던 그들은 동료 작가의 해고를 두고 부당함을 주장하고 있었다. 얼마 전 개편을 거치며 동료 작가가 PD의 말 한마디로 해고됐기 때문이다. 봄·가을 개편 때마다 조립제품을 부수고 만들듯 프로그램을 없애고 신설하며, 부품 몇 개 빼내듯 작가들의 자리를 빼버리는 어이없는 상황은 마치 방송계의 고유한 문화처럼 자행되고 있었다. 함께 일하던 동료가 해고되는 모습을 6개월마다 목격해야 하는 일터에서 작가들은 더 이상 그런 부당함을 직업적 숙명으로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들은 펜을 놓고 검은 조끼를 입었다.

당시 대구 지역 민영방송사에서 근무하고 있던 나는 아무것도 모르고 선배를 따라나섰다가 그 어마어마한 현장을 마주했다. 방송작가 자리는 방송사에 의해 언제든 없어질 수 있으며 어쩔 수 없는 운명이라고 내림굿처럼 세뇌받아온 나에게 그들의 저항의 몸짓은 그야말로 충격이었다. 잘못된 것을 잘못되었다고 말할 수 있는 용기와 그 용기의 원천이 되는 연대의 힘이 그곳에 있었다. 그때 대구 MBC 작가들의 부당해고와 고용불안에 대한 저항의 불씨는 (정규직 중심으로 구성된 노동계의 견고함을 넘지 못하고) 미처 타오르지도 못한 채 사그라지고 말았지만, 여성 방송작가 예닐곱 명이 크고 차가운 콘크리트 건물 앞에서 꼿꼿하고 야무지게, 검은 바위처럼 앉아 있던 모습은 아직도 기억 속에 강렬하게 남아 있다.

그로부터 꼭 20년이 흐른 2021년, 나는 서울 상암 MBC 앞에 섰다. ‘일 시킬 땐 직원처럼, 해고할 땐 프리랜서’라는 문구가 적힌 1인 시위 피켓을 들고. 지난해 6월 MBC는 10여 년간 매일 새벽에 출근해 성실히 근무하던 보도국 소속 작가 두 명을 인적쇄신과 개편을 명분으로 별안간 해고했다. 20년이 지나도록 개편을 명분으로 방송사가 방송작가를 벼락 해고하는 일은 여전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작가들은 포기가 아닌 싸움을 선택했고, 방송계의 잘못된 관행에 정면으로 맞서기로 한 것이다.

방송작가 유니온이 힘을 보탰다. 지역을 불문하고 작가들이 서울까지 와서 1인 시위에 동참했고, 해고 당사자인 두 작가는 서울지방노동위원회에 부당해고 구제 신청을 냈다. 결과는 각하였다. 방송작가는 근로기준법상 노동자로 볼 수 없다는 것이 그 이유였지만, 포기하지 않았다. 중앙노동위원회에 재심 판정 요청을 했다. 그리고 2021년 3월19일 오후 8시, ‘초심 취소’라는 결과를 받아냈다. 프리랜서라는 신분과 업무상 재량권 등 방송 제작의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근로 실질 부분에서 작가들이 문화방송 정규직 상급자들에게 상당 부분 종속된 관계로 근로를 제공해왔음을 인정받은 것이다. 그리고 이는 방송작가가 ‘근로기준법상 근로자’로서 지위를 인정받은 첫 번째 사례가 됐다. 금요일 늦은 오후, 소식을 전해들은 전국의 방송작가 유니온 소속 작가들은 각자가 있는 곳에서 눈물을 흘렸다.

실패 위에서 한 걸음

‘역사란 현재와 과거의 끊임없는 대화’라고 했다(E. H. 카, 〈역사란 무엇인가〉). 2001년과 2021년의 시위, 이 두 사건은 나에게 그러한 역사적 상호작용으로밖에 설명할 길이 없다. 20년 전 선배 방송작가들의 용기가 지금의 우리를 움직이는 시작이 되어주었고, 지금 우리의 용기와 의지는 과거의 실패 위에서 더욱 단단해질 수 있었다고 믿기 때문이다. 만일 이번 중앙노동위원회 판정이 원하는 대로 나오지 않았다 하더라도 방송작가들은 포기하지 않았을 것이다. 좌절하기보다 지금보다 한 발 더 나아가는 내일에 또 도전을 했을 것이다. 간절함은 언제나 용기와 동력이 된다. 그런 의미에서 방송작가의 노동자성을 인정한 중앙노동위원회의 역사적인 판결은 새로운 시작이며, 방송작가들은 그렇게 또 한 걸음 나아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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